제1회 히말라야문학상 수상작 공개

작성자
na**
작성일
2024-12-16 14:30
조회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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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심사평>

– 고광자 (시인, 문학평론가)

제1회 히말라야 문학상 공모로, 많은 관심 속에 시 부문에서, 40여 편의 시가 접수되었습니다.

소설, 수필, 시조, 시, 장르별 응모 작품들이 모두 수준급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심사위원 대부분이 대상의 기준을 시 분야로 입을 모으게 되었는데, 그만큼 응모 편수나 내용에서 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입니다. 워낙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아서 심사숙고하며, 가려낸 결과 신경철 님의 「히말라야 -오은선 산악인을 기리며」란 시가 최종 대상 작품으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대상 부문>은 시적 표현이 잘된 시로, 화자는 히말라야에 묻힌 오은선 산악인에 대한 깊은 사랑과 배려의 마음이 클라이맥스를 이룹니다. 히말라야의 대자연 속에서 산이 된 사람으로 종결을 맺으며, 아픔을 승화한 굵직한 전개로, 독자들의 마음에 쉽게 다가가게 하는 공감의 시입니다.

<금상 부문>에 「히말라야의 돌 깨는 아이」는, 요즘 보기 드문 장편의 시로 10연 58행의 과거, 현재, 미래가 존재하는 창작이며,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잠재된 추억을 끄집어내어 쓴 시입니다, 독자에게 긴 여운을 남기게 하는 마법 같은 시로, 금상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동상 부문>에서는 세 분 모두 3편씩을 출품한 아주 좋은 작품들입니다.

최정규 님의 「다랑이」 3행에 ‘식솔들 소망 닮은 실한 두럭/가장 등판만 한 전답 남루한 생존에/히말라야 산 그림자가 엎드렸다.’ 가난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삶을 느낄 수 있으며, 화자의 참신한 문장을 구상함에 돋보이는 시였습니다.

박천순 님의「묵티나트 가는 길」은, 신을 섬기는 겸손한 마음으로 노래하는 시입니다. ‘세상 속도에 발맞출 필요가 없어요/바람이 빚는 절벽 속에 내가 있고/건초를 삼키는 양 떼 속에 내가 있어요’라고 표현합니다. 힌두교의 2대 성지 중에, 묵티나트에서 기도하는 화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김완수 님의 「발굴」 1연에 ‘눈보라로 발자국을 지웠다가/아무도 찾지 못할 때/울컥한 가슴으로 파헤쳤을 것이다.’ 에베레스트산이, 조난의 산악인 구(具)를 가슴에 안고, 혹여 조문이 끊길까 봐, 뒤늦게 산이 스스로 찾아냈다는, 만년설의 전경을 이미지화한 시입니다.

이상 훌륭한 작품들을 만나며, 수상자님들께 크게 축하를 드립니다. 문운이 왕성하시기를 희망합니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 응모 편수를 지정하여 받는 것도 형평상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소설 심사평>

– 소설가 류은경

소설은 읽는 이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발상의 참신함이 있어야 하고,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묘사가 필요하다. 쉽게 읽히는 안정적인 문장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이번 소설 부문의 응모작들은 아쉬움이 많았다.

그 가운데 <불빛>과 <안나푸르나의 남자>가 눈길을 끌었다. 본심에 올라온 두 작품은 각자 지닌 매력이 있었다.

황우상 님의 <안나푸르나의 남자>는 ‘자연’이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어떻게 훼손되는지를 지적한 작품이다. 발 빠른 남자 람체와 목소리 큰 남자 광섭이 아버지를 통해 인간이 환경에 의해 도태되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소설의 구성이 전반적으로 평이했고, 전 세대의 공감을 얻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최진영 님의 <불빛>은 호들갑스럽지 않은 문장으로 담담하게 소설을 풀어나가면서도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충분히 표현한 작품이다. 여행자와 이방인의 경계에 서 있는 화자를 통해 인간을 향한 연민과 앞날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 점도 미덕으로 꼽혔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울림의 정도가 다소 약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는데, 삶을 바라보는 최진영 님의 따뜻한 시선에 기대를 걸어보며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향후의 작품에서 한결 농익은 감동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시조, 수필 심사평>

– 이광녕 (시조시인, 수필가)

시조의 응모 작품 수는 아쉽게도 적은 편이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시조에 대한 인식과 그 작법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한 데서 오는 꺼림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시조 짓는 법’을 잘 몰라서, 쓰기 편한 자유시를 선택하여 정서를 표현한 응모자가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시조는 우리 조상들의 얼과 혼이 깃들어 있는 고유의 전통문학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널리 보급되지 못하여 응모자들이 적으니, 심사자로서는 다소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시조는 우리 고유의 정형시다. 이번에 응모한 작품들은 시조의 전통 형식 준수에 대체로 충실하였으며, 그 내용 또한 문학성이 풍부한 편이었다. ‘히말라야’라는 글감의 제약을 극복하고 여러 작품들이 시조 형식에서 우러나오는 운율미를 살리면서 이국적인 독특한 정서를 잘 살려내었다. 특히 「안나푸르나 여정」 같은 작품은 한계에 도전하는 맥진한 오체투지의 모습을 수행 과정으로 그려내면서 ‘돈오(頓悟)’ 즉, 하늘빛 껴안고 자아를 만나고 드디어 우주를 만나는 환희의 경지까지 시상을 넓혀갔으니, 신선한 시적 감각으로 영혼의 깨달음 미학을 남겨 퍽 인상적인 수작이었다. 그리고 「히말라야를 꿈꾸며」는 현지 체험은 하지 못했지만, 히말라야 설산의 신비성과 그 역사성, 그리고 꿈을 못다 이룬 알파인에 대한 연민과 그 애련의 정을 작가의 입장에서 자비롭게 표현하여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수필 장르도 ‘히말라야’라는 제한된 글감이 제시되었기에 현장체험이 적었을 터이고, 그래서 응모작도 적은 편이었다. 수필은 이국적 색채를 띄는 글감이었기에 대개가 다 기행문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기행문의 3요소가 여정, 견문, 감상인데, 이 3요소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 문학적 인상도 풍겨 주어야 한다. 그리고 수필은 체험적이며 1인칭인 나의 문학이고 고백적이기에 주관적 견해도 진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출작 대부분이 자아의 고백적 감상보다는 이국적 풍경들을 서사적 진술로 열거하면서 여정에만 치중되어 있어서 아쉬움을 더하여 주었다.

그러나 여러 작품 중에서 「지상의 샹그릴라」 같은 작품은 생생한 답사 열정과 세심한 탐구 정성, 그리고 실감나는 현장 묘사, 특히 한국인 닮은 렙챠족을 추적하며 우리 민족과의 동질성을 의식하는 작가의 감성과 감동이 읽는 이로 하여금 큰 감동을 느끼게 하여 지울 수 없는 퍽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그리고 「히말라야 순례길」은 다른 글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시상의 전개 기법이 눈길을 끌었다. 시와 수필의 경계 모호성에 고개를 흔들기도 하였지만, 읽어나가는 동안 누에 실 풀어내듯 이어지는 자유분방한 내면적 사유의 깊이, 인생 순례길에서 깨달아 얻어낸 감성적 진술, 그리고 자아의 존재감과 실존 의식을 초월적 필체로 전개시켜 나간 점이 독자들에게 크게 각인된 특색 있는 좋은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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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수상작>

히말라야 오은선 산악인을 기리며

신경철

그곳을 오르는 건

峰이 유명해서가 아니다

계곡 어디쯤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는 그가

보고파서도 아니다

날 두고

마음만 가져가 버린 이유

頂上의 발끝에 묻고 싶었다

숨은 멈추었는지

지워지지 않고 날 붙들고 있는 이유도

발자취 따라 느끼고 싶었다

가야만 한다고 했다

자기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우리의 사랑은

시간에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의 정원에 간직해야 한다고

인간의 삶이란 게

무한히 흘러가는 억겁 시간의 틈새에

영원한 추억을 남기는 것이라고

하늘은 소리 내어 劍舞를 추고

14座는 하얀 風哭을 뱉는다

발가락 끝 모세혈관은

헐떡이다 지쳐 무감각해진 지 오래

걸음에 얹힌 마음은 점점 무거워지고

제일 먼저 그를 알아보겠다던 의지는

산란되는 빛에 흩뿌려져 흐릿해지고

남은 것은 그저 정상을 향한 반복된 몸짓

더 갈 곳이 없는 하늘 끝에

그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내려오지 못할 수 있다는

초라한 두려움을 등에 지고

히말라야에 올라야 했던 이유

선택되어야 딛는 것이 허락되는 그곳에서

마지막에야 알게 되는 겸손과 경외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교만을 벗어던진 순수한 모습으로

사랑이 거기 있었다

그는 산이 되었다

<대상 수상 소감> – 신경철

먼저 심사위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히말라야 문학 공모전을 기획하시고 준비에 애써주신 나마스떼코리아와 시산문학작가회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고봉에 오르는 것, 그것은 곧 인생이고 사랑이며 도전하는 것 자체가 숭고한 의미가 있는 것이란 마음이 들었습니다. 14좌 등반 기록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경쟁자였던 故 고미영 산악인의 사진을 품고 안나푸르나 등반을 마쳤던 오은선 산악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히말라야 고봉들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랐던, 무엇보다 순수했던 그 마음을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큰 상을 받게 되어 아직도 긴가민가합니다. 겸손하게 노력하라는 소중한 다독임으로 감사히 생각하고 더욱 성숙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금상 수상작>

히말라야의 돌 깨는 아이

고경화

이제는 어른으로 자란 두 딸들 어렸을 때

예까라 불리던 큰 산 길잡이 따라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향해 걸었던 적이 있다

하늘 같은 산은 안 보고

거친 돌길을 보며 며칠씩 걷다가 지친 딸들

왜 이런 곳에 데려왔냐며 원망을 했다

다랑논 같이 펼쳐진 마을마다

지친 오늘을 잊게 하는 희망 같은 아이들

어미의 등에 매달려 허리를 젖히며

검은 눈동자 가득 나를 보던 아이

하룻밤 묵어가는 롯지의 이른 아침

곱게 마당을 비질하던 아이

앞서 걷는 아비 뒤로 긴 당나귀들의 행렬 끝에

휘파람을 불며 가는 아이

그리고 만났다

돌무더기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장갑도 없이 돌을 깨는 작은 소년을

자고 나왔을 집보다 높이 쌓인 돌무더기 옆에서

오후의 햇살을 등지고 앉아 돌을 깨던 아이

나는 소년의 동생이 두고 간 망치를 들고

돌 위에 앉아 돌을 포개어 놓고 깨기 시작했다

아이는 내가 조각낸 돌들을 가리키며 웃었다

나도 웃었다

우리는 말없이 마주 앉아 돌을 깨며

이따금씩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돌덩이 같은 시간들이 잘게 부서져

탑 같은 돌무더기가 생겨나고

삶의 수고로운 상념들이 높이 쌓여

와르르 돌무더기에서 구를 때쯤이면

쪼갠 돌을 옮겨 다른 한 켠에 돌산을 짓고

돌아와 다시 조각내는 어제와 오늘

가족들은 어느새 식사를 마치고 나와

해 지기 전에 넘어야 할 산을 가리킨다

깨어진 돌들과 깨야 할 돌들 사이에서

돌먼지로 하얘진 손을 털고 일어서며

나는 조금 어지러웠다

배낭에서 꺼내 소년 앞에 내민

작은 초콜릿이 왜 그리 부끄러웠을까

우리는 더 이상 마주 보고 웃지 않았다

시간은 위로도 아래로도 흐르지 않고

마주 본 두 눈 사이에 멈추었다

산을 오르던 중에 만났던 그 아이들을

내려올 때는 보지 못하였다

십수 년이 흘렀어도 히말라야를 생각하면

마주 앉아 돌을 깨며 맑게 웃던

소년의 검은 눈동자가 떠오른다

안나푸르나를 둘러싼 천 년 만 년 같은 흰 눈보다

마차푸차레 봉우리에 내려앉은 장엄한 노을보다

소년은 자라서 돌무더기 마지막 돌을 깨고

따박따박 산길을 걸어 내려와

학교에도 가고 집도 짓고 결혼해

자신을 닮은 아이도 낳았을까

그날처럼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어

삶의 빛나는 순간들을 쌓아올리고 있을까

지금도 눈 감으면 소년은

그때 모습 그대로

내 심장이 뛰는 소리에 맞추어

돌을 깨고 있는데

<금상 수상 소감> – 고경화

부족한 제가 상을 받게 되어 감사합니다. 더욱 잘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새기겠습니다.

잠시 만났지만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산에서 만난 어린 소년은 오래도록 제 가슴 속에서 살았습니다. 시를 쓰는 과정에서 유년 시절의 저를 어린 소년에게서 보는 듯도 하여 소년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수상을 계기로 소년이 자라 한 사람의 어른이 되듯 저 또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저의 손을 내밀어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저에게 애정과 도움 주시고 가르침 주신 모든 분들께 허리 굽혀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늘 제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제 남편에게 이 지면을 빌어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은상 수상작>

불빛

최진영

그에게 눈길이 갔던 건 뭘 해도 엉성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셰르파인 아버지가 데려온 손님이었다.

“오늘부터 며칠 묵을 손님이야. 한국에서 왔대.”

키는 컸지만 어딘가 소심해 보였다. 아궁이를 계속 보고 있지만 불을 자꾸 꺼뜨렸다. 차려진 밥상도 잘 먹질 못하면서 숙소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도와줘야 할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그걸 왜 들고 있어요?”

냉장고를 끙끙거리며 옮기려 하는 남자에게 물었다.

“제가 아니면 00 아버님이 하셔야 하는데 너무 무거울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그녀의 아버지는 냉장고를 짊어지고도 히말라야를 올라가는 사람이었다. 히말라야까지 갈 건 아니지만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이 그런 것도 모르는 게 우스웠고 착한 마음씨가 귀여웠다.

“둬요. 아버지가 할 거예요. 그리고 어차피 어디다 두든 안 중요해요. 어차피 내일 짊어지고 올라갈 건데요, 뭐.”

“네? 어, 네. 한국어를 잘하시네요”

“언젠가는 한국을 갈려고요. 여기서 한국 사람을 많이 봤는데 다들 친절해서. 아마 곧 이곳을 떠나지 않을까 싶어요.”

그에게 웃어 보이고 아궁이에 불씨를 불어 넣으며 물었다.

“히말라야는 왜 온 거예요? 아무것도 안 알아보고 온 거 같은데.”

“그냥 셰르파라는 단어가 맘에 들어서요. 셰르파의 뜻이 동쪽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잖아요. 한국은 동쪽에 있어서 해가 가장 빨리 뜨는 나라에요. 그런데 난 한국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내 나라가 좋지만, 답답해서 도망치고 싶었는데 멀리 도망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도 동쪽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말은 좋았어요. 어차피 여행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잖아요. 여행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었어요. 그냥, 같은 동쪽일 뿐이지만 여긴 히말라야가 있잖아요. 올라가 보면, 저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해서요.”

남자는 꽤 길게 말하고 얼굴을 붉히고 아궁이를 바라봤다.

셰르파의 단어의 어원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거기에 이끌려 여기까지 온 남자가 신기해 빤히 쳐다봤다.

“셰르파의 어원에 대해 그렇게 길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저도 동쪽으로 가고 싶지만, 이 동쪽은 아니에요. 당신이 있었던 동쪽이죠. 우리는 서로 다른 동쪽에 관심이 많네요.”

“00 씨는 갈 수 있을 거예요. 히말라야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면 거기서도 길을 잃지 않을 거예요. 00 씨는 이렇게 한국말도 하고 영어도 하잖아요.”

“저도 히말라야에서 길을 잃어요. 거긴 영어도 한국어도 소용없죠. 아, 내일 일찍 출발해야 하지 않아요?”

“괜찮아요, 저는 히말라야 정상까지 가지도 않아요. 정상을 가더라도 지금보다 더 좋을 것 같지도 않은데요, 뭐.”

그의 이 한마디 말에 2년 후쯤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한국행을 1년 8개월 정도 앞당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겨질 것들이 아쉬워 넉넉하게 뒤로 미루었는데 그 한마디에 그다지 아쉽지 않아졌다. 앞에 둘 새로운 것들이 궁금해졌다. 한국의 모든 것들은 이 사람처럼 온유하고 따뜻할까 싶어서.

이튿날 아침, 그는 일행과 같이 출발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여기 숙소에 머물겠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는 쌍꺼풀 없이 나보다도 눈이 컸다. 반듯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섬세했다. 어딘가 앉을 때 손수건을 깔아주었다. 내 얼굴을 한참 동안 빤히 바라보다가 눈이 정말 예쁘다고 칭찬하고 당황하는 나를 바라보며 마주 웃어주곤 했다. 술을 마신 저녁에는 그와 아궁이를 바라보았다. 그런 저녁에는 그에게 내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와 내 물렁하고도 강한 부분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에게 엄마가 돌아가신 얘기를 짧게 꺼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고 싶어 영어와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 얘기를 들려줬다.

“우리 아빠는 나 때문에 열심히 번 돈을 다 날리게 될지도 몰라.”

깜깜해진 마음에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도 너와 같아. 엄마는 돌아가셨고 이렇게 빙빙 돌아가는 나 때문에 우리 아버지도 돈을 낭비하고 계시지. 하지만 넌 길을 알고 있는 거 같아.”

그는 동그랗게 파묻힌 나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멋진 사람이니 작아질 필요가 없다면서. 그런 위로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이 남자는 여러 번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당황해서 심장이 뛰었다. 무릎에 파묻은 얼굴을 꺼내 그의 얼굴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아궁이의 불빛은 따스했고 어두워서 내 첫 입맞춤의 조명으로 적절했다.

* * *

아버지는 언젠가는 널 떠나보낼 생각이었다며 덤덤하게 내 유학 절차를 밟아주었다. 그동안 산을 숱하게 오르면서 준비했던 일이라고. 너는 어릴 때부터 영특해서 높은 곳보다는 먼 곳으로 떠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떠나는 게 두렵지 않았다. 나는 누가 뭐래도 히말라야의 아이였다. 그쯤은 두렵지 않아야 했다. 한국에 도착한 후에 외롭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 도착한 첫날은 늑골 한쪽이 무겁도록 외로웠다.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핸드폰 후레쉬를 켜고 공용 주방에서 조용히 계란을 삶았다. 삶아지는 동안에 부엌에 쭈그려 앉아 가스불을 올려다 봤다. 그가 보고 싶었다.

따듯한 삶은 계란 세 개를 먹고 아이스크림을 퍼먹었다. 배가 채워지니 외롭지 않았다. 잠이 밀려왔다. 새로 산 핸드폰을 손에 쥔 채로 잠에 들며 생각했다. 일주일 후엔 그에게 연락할 것이라고.

그에게 연락은 한 것은 그보다 더 뒤였다. 학교가 개강하고 아르바이트를 구한 후였다. 나는 그에게 퍼즐처럼 맞춰진 내 일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와 비슷한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4층짜리 호프집에서 층을 오르내리며 일했다. 층을 오르내리다 보면 땀이 흠뻑 났다. 그날의 일이 끝나면 나른하고 씁쓸하면서 어쩐지 안심되는 기분이 들었다. 수업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와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말을 걸어오는 동기들과 같이 밥을 먹었다. 이런 일상들이 익숙해진 날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을 손에 쥔 손에 땀이 났다. 아르바이트가 끝난 날에 그와 한강에서 보기로 했다. 나는 아직 한 번도 한강을 가 본 적이 없었다.

한강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부분이 한국 사람들이었고 종종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보였다. 나와 같은 나라 사람들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멀리 그의 얼굴이 보였다. 한국이네, 싶었다. 그는 왜 한국에 온 걸 말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연락처만 남겨주고 간 것을 후회했다고 했다. 나는 그냥 웃었다. 그를 만나고 한국에 오려던 내 마음이 앞당겨졌지만, 한국 하면 그가 떠올랐지만, 그가 내 한국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한강보다도 그가 보고 싶었다.

“신기하다. 한강.”

“히말라야를 보고 자랐으면서 이런 게 신기해?”

“히말라야를 보고 자라서 신기해.”

한강의 풀밭에 앉아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하며 웃었다. 한강의 풀밭엔 연인들이 가득했다.

“한국은 정말 한민족의 나라네. 여기 근처에서 인종이 다른 커플은 우리뿐인 거 같아.”

“에이, 한국에도 우리 같은 사람 많아, 진짜.”

글쎄, 우리 같은 사람은 드문 것 같은데. 그런 말은 꺼내지 않고 그의 눈을 보며 웃었다. 눈이 예쁜 남자다. 한강을 그와 바라보며 있자니 한강이 무척 예뻐 보였다. 어쩌면 내가 여기에 무리 없이 녹아들 수 있을 것 같다는 낙관이 들었다. 종종 보이는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처럼 이곳에 익숙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그와 나는 같이 치킨과 맥주를 마셨다. 치킨을 다 먹고 맥주를 홀짝이며 강에 비치는 불빛들을 보고 있자니 같이 아궁이를 봤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여기 불빛은 아궁이와 다르게 꺼질 일이 없다. 어룽거리는 불빛을 보고 있자니 취기가 더 도는 것 같았다. 그와 다른 동쪽에서 불빛을 보고 있다는 게 행복했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서로의 학교에 놀러 가 같이 시간을 보내거나 밥을 먹었다. 그는 나의 자취방에, 나는 그의 자취방에 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의 학교에서 조금 눈에 띄는 커플이 되었다.

아르바이트도, 수업도, 그도 없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 정도 있었다. 그런 날은 학교 근처를 걸어 다니며 구경했다. 어느 작은 가게를 빤히 바라보다가 가게주인의 경계 어린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한국인에게는 와서 구경하라고 한 건 같은데. 뾰족한 마음이 종종 일어나기도 했다. 혼자서 일주일 중 고작 하루, 그중 몇 시간 있었을 뿐인데 이런 마음이 드나 싶어 내가 우스워 픽 웃기도 했다.

그런 날이 어쩌다 보니 3일 정도 이어졌던 날에 그를 만났다. 학교 시험이 끝나고 오랜만에 그를 보는 날이기도 했다. 그날은 그의 동네를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의 손을 잡고 그가 설명해주는 동네를 보는 건 꽤 즐거웠다. 이불을 빨러 가는 코인 세탁방, 동전을 까먹고 안 가지고 와서 한여름에 솜이불을 짊어지고 곤란했던 일, 여기는 앉아가기 좋은 공원이 있어서 너와 통화할 때 여기를 걸으면서 통화하곤 했다는 얘기. 그의 그다음 얘기가 자주 가는 슈퍼마켓으로 넘어갈 즈음이었다.

“아, 이 동네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네.”

씁쓸했다. 웃어넘기기엔 그런 말들의 중복이 유독 많은 주였다. 웃어넘겨지지 않았다. 그는 못 들은 눈치였다. 그에게 씁쓸한 티를 내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가 아는 내 세상은 이런 말이 없는 세상인 줄 알길 바랬다. 슈퍼마켓 얘기에서 친구들과 자주 가는 작은 술집 얘기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은 어묵탕에 소주를 먹자고 그가 말했다. 나는 조금 오바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그는 내가 심란해서 한 헛소리에도 멋지다고 해주는 남자고, 단둘이 술 마시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다. 누군가가 궁금해서 단둘이 술 마시고 싶었던 처음의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에게 솔직하게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언제나 멋지다고 해줘서, 솔직하게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언제나 멋진 히말라야의 사람이고 싶었다. 이런 일쯤은 넘기는 의연한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에게 너무나 기대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들은 나를 외롭게 했다.

히말라야의 불빛이 보고 싶었다. 히말라야의 아궁이 앞에서라면 그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불빛은 가스버너뿐이었다. 그곳이 못 견디게 보고 싶었다.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술기운에 따뜻한 내 얼굴인지, 그의 온기인지 몰라도 따뜻했다. 내 어깨를 감싸는 그의 손을 느끼며 생각했다.

너는 나를 모른다고. 그래서 나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데 아직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서 나를 알려줄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사실은 몇 번 정도는 픽 웃어넘기지 못하고 혼자 우는 날들이 있었다고. 가끔 막막하게 외롭다고. 이런 말들이 하고 싶었다. 한국말이 아닌 내 언어로.

‘나는 한국 사람이 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라 자유롭게 살려고 이곳에 온 거였어. 자유롭다는 건 길을 잃는다는 뜻이었을까? 나도 모르겠다. 잘 모르겠어서 말을 못 하겠어.’

“보고 싶어. 너랑, 보고 싶어.”

그는 웅얼거리는 내 말을 들었을까. 이 말만 듣고 모든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그날의 아궁이가 무척이나 그립다. 장작 넣는 방법을 열심히 듣던 네 모습, 이방인이었던 너에게 우리나라에 대해 알려주던 그때.

여행객도 아닌 이방인이 돼 버린 나에게, 몹시 그립고 멀게만 느껴지는 날이다.

<은상 수상 소감> – 최진영

부족한 글임에도 불구하고 상을 받게 되어 기쁩니다.

타지에서 온 사람들, 특히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타지에서 온 사람들의 한국 생활은 어떨까 상상하면서 썼습니다. 저 또한 이방인의 나라에 가게 되면 이방인이 되겠지요. 이런 생각들을 모아 쓴 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상작>

시조 부문 동상 – 안나푸르나 여정

김부배

참회할 그 무엇이 그토록 많았을까

하얗게 두 손 모은 간절한 합장 기도

매서운 하늘 눈초리 끌어안고 일어선다

한계에 도전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꿈을 향해 허위허위 설산을 닮아가며

맥진한 오체투지로 돈오의 길 오른다

복받친 서러움은 눈밭에 묻어두고

가쁜 숨 몰아쉬며 하늘빛 껴안으니

드디어 나를 만나다 온 우주를 다 품었다.

<수상작>

시조 부문 동상 – 히말라야를 꿈꾸며

권오운

신들이 사는 궁전은 범접 못 할 영역인가

심술궂은 속내도 얼어 철문을 열지 못하고

날씨도

그들 편인가

다가갈 수 없었다

아는 것 하나 없는 너의 길을 밟아 가며

정상은 하늘의 뜻 그대 품에 안겨 본다

수만 년

신비의 나라

꿈속에도 그리운

전설은 없었던 이야기 한올 한올 풀어내며

백설의 나래 옷 펼쳐 깊은 잠에 드신 이

알파인

꿈꾸던 손을

녹여주고 싶었다

<수상작>

시 부문 동상 – 발굴

김완수

또 한 구(具)의 걸음이 발견됐다

산의 주름에 파묻힌 걸음을

뒤늦게 산이 스스로 찾아냈다

얼음이 녹아내리는 산은 울음의 화산

다른 걸음의 조문(弔問)이 끊길 것 같아

눈보라로 발자국을 지웠다가

아무도 찾지 못할 때

울컥한 가슴으로 파헤쳤을 것이다

만년설을 그리며 오르다가

숨찬 소리에 헛디뎠을 걸음

산을 안다는 것은

발이 푹푹 빠지는 일이므로

히말라야에서의 실종은 조난이 아니다

조문은 드러난 내력(來歷)을 듣는 것

등반은 산의 속살을 짚어 보는 것이다

산 아래 사람들이 편의의 군불을 땔수록

에베레스트산의 표정은 녹아내린다

한 꺼풀씩 이름이 낮아지듯

꽁꽁 언 표정을 잃어 가는 산

앓던 산이 해빙(解氷)의 눈물을 흘렸을 때

마지막 걸음은 화석처럼 드러나고

걸음을 되밟은 사람들은

차가운 증거 앞에서 산을 문병했을 것이다

흘러내린 눈물은 위험의 호수가 되고

관심 밖의 시간만큼 불어난 무게

주검은 수습해도 울음은 수습할 수 없다

쩍쩍 갈라지는 근심의 크레바스*

아무도 속사정에 관심 갖지 않던 날

또 한 구의 걸음이 내려왔다

*crevasse : 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

<수상작>

시 부문 동상 – 묵티나트 가는 길

박천순

차가 멈춘 곳에서

길은 시작됩니다

네와르족 타칼리족 구룽족

부족은 달라도

신을 섬기는 자세는 같습니다

바람과 동행하며

고개 숙이는 겸손

노래가 없다면

바람마저 없다면

이 골짜기 얼마나 황량할까요

타박타박 제 발소리를 들으며

노래하고 기도하고

삶은 단순해서 아름답습니다

신의 나라, 산의 나라에서

바람이 빚는 절벽 속에 내가 있고

건초를 삼키는 양떼 속에 내가 있습니다

어디에도 함부로 할 수 없지요

겸손, 또 겸손하면

묵티나트 108개 쇠파이프 물이

죄를 모두 씻을 수 있을까요

아직은 깨달음이 먼 길 위

어김없이 바람이 붑니다

*묵티나트: 네팔의 힌두교 2대 성지

<수상작>

시 부문 동상 – 다랑이 (Rice Terrece)

최정규

천 층층 만 계단 굽고 부른 가팔막에

식솔들 소망 닮은 실한 두럭

가장 등판만 한 전답 남루한 생존에

히말라야 산 그림자가 엎드렸다

가난한 나라 골 샅에서 태어나

다랑에 뛰어놀다 농군 되고

늙어 두럭 베고 마감한다는 한 뉘

애면글면 가꾸는 터전

다직한 산골 두메 농사에

넉넉한 풍작의 기다림 위로

울울창창 푸른 찬가 흐드러진 꽃 웃음도 어우러졌다

땀내 밥내 구수한 풍경

층층 겹겹이 실은 그득한 곡식

힘겨운 여유의 풍속화를 만나다

<수상작>

수필 부문 동상 – 지상의 샹그릴라

최정식

언제나 길은 아득합니다. 뒤돌아보면 너무 멀리 왔고, 가야 할 길은 그저 까마득합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위에서 수없이 망설이고 주저앉기도 했지요. 그래도 운명이라 믿고 내 앞으로 뻗은 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길이 엉키고 풀렸다가 가르마처럼 선명하게 한 길로 뻗은 곳에 캉첸중가 산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나는 그 길 끝에서 내가 평생 걸어온 방향의 의미를 알 것 같았습니다. 그 산기슭의 평화로운 렙차족 마을에서 마침내 지상의 샹그릴라를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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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캉첸중가)

‘하늘 위의 빛나는 보석’으로 불리는 히말라야 캉첸중가(해발8,598m)를 찾은 것은 행복의 근원을 모색하기 위한 다큐멘터리 촬영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청춘을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에 바쳤습니다. 국내는 물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며 30여 년 동안 촬영 작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내가 걸어오면서 남긴 발자국들이 내 삶의 기록일진대, 항상 채워지지 않는 욕구의 갈증으로 번민했습니다. 내 작업의 가치에 대해 의문이 들었습니다. 내가 찍은 다큐멘터리가 과연 사람들에게 반짝이는 영감(靈感)이나 따뜻한 위로를 주고 있는 것일까? 그런 회의와 갈등에 휩싸여 방황하고 있을 때 히말라야 시킴왕국의 렙차족 마을과 인연이 닿았습니다.

21세기가 열리면서 우리 사회는 급속히 발전했지요. 하지만 모든 게 풍요로워졌는데 사람들이 두루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연구조사가 발표됐습니다. 놀랍게도 지구촌 전체에서 행복지수 1위는 북인도 시킴주였지요. 국민소득이 아주 낮은 히말라야 산자락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고 산다는 기사를 보고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이 그렇게 사는 이유를 카메라에 담아 보면 어떨까?’

기사를 스크랩하고 자료를 모으고 <시킴 히말라야>의 저자 임현담 씨를 만나 자문을 구했습니다.

“시킴왕국은 원래 독립국이었습니다. 인구는 55만 명 정도인데 네팔인, 렙차족, 부티아족이 어우러져 평화롭게 살고 있습니다. 종교, 문화가 달라도 시킴 안에서는 큰 갈등 없이 서로 존중합니다. 시킴왕국 중에서도 렙차족이 모여 사는 ‘종구’를 취재한다면 그건 세계적인 특종일 겁니다.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돼 지금까지 외부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은둔의 마을이거든요. 저도 그 지역을 여러 차례 들렀지만 종구에는 들어가지 못했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렙차족의 종구 마을을 취재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프로그램 기획이었지요. 꽤 많은 제작비가 예상되는데 이 다큐멘터리를 어디에 방송할지 결정 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미 몸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전에도 티벳, 네팔 등 히말라야 지역을 수차례 취재한 적이 있었지요. 경외심이 절로 솟구치는 대자연의 풍광이나 현지인들의 절대적인 신앙생활과 풍습을 스케치했는데 수박 겉핥기식으로 카메라를 들이댔던 것 같아 늘 아쉬웠습니다.

이번에는 차분하게 일정을 잡고 단단히 준비를 했습니다. 시청자들보다 내가 먼저 삶의 풍향계와 행복의 온도계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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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킴왕국의 렙차족 마을)

네팔의 카트만두로 날아가서 현지 가이드 가네쉬 씨와 합류했습니다. 그는 십 년 전부터 함께 일을 했던 히말라야의 파트너였지요. 취재팀은 그렇게 단 두 명이었습니다. 나 혼자 연출과 촬영을 맡은 악조건이었습니다. 우리는 카트만두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인도 국경 부근의 바드라푸르 공항까지 이동한 뒤, 소나울리에서 출입국 수속을 밟고 서뱅골의 실리구리로 향했습니다.

인도의 시킴 주로 넘어갈 때는 출입관리소에서 15일짜리 체류 허가를 별도로 받았습니다. 네팔인 가이드 가네쉬 씨는 출입관리소 부소장과 친하다면서 문의를 했습니다.

“부소장님. 렙차족 마을 종구를 취재할 수 있도록 좀 도와주실 수 없을까요?”

“아! 거기는 안 됩니다. 시킴의 어떤 곳이든 제가 소개장을 써드릴 수 있는데 종구는 허가가 나오지 않아요.”

현지 여행사 여섯 군데를 통해서 문의를 해봤지만 모두 ‘불가’라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럴수록 렙차족 마을에 들어가고 싶은 열망이 가득 차올랐지요.

캉첸중가의 일출과 트레킹 코스를 촬영하고 돌아오는 길에 시킴의 시인 수남 바르데바 씨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는 60대의 노인으로 젊은 시절 신문기자로 활동하다가 노후에 호텔을 경영하면서 시를 쓴다고 했습니다.

지상 2층, 지하 2층의 <슈퍼뷰 히말줄리 호텔>에서 그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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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첸중가 산자락의 렙차족 마을 풍경)

해야! 나의 친구야.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리의 통합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리의 통합이다.

그러니 이제 새 시대를 열어가자.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발전

하나의 신의 힘이 있어

하나의 신의 힘이 있어

히말라야 캉첸중가 당신께 나의 기도를 바칩니다.

-수남 바르데바(시킴 시인)

바르데바 씨는 먼저 자신의 시를 낭송한 뒤 시킴을 자랑했습니다.

“인도에서 우리 시킴이 가장 평화로운 지역입니다. 종족 간의 분쟁이 없습니다. 여기 사는 사람들 모두가 약속하고 가꿔왔기 때문입니다.”

통합을 외치는 시인의 외침처럼 시가지 곳곳에 평화를 상징하는 깃발 룽따가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다툼 없이 더불어 살자”는 그들의 노래가 간절한 이유는 아마 과거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역사를 경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히말라야 인근의 고산족들은 사나운 이민족들의 침입을 피해서 험준한 지형으로 이주했다고 하지요.

시인의 아들 부손 바르데바 씨가 시킴 가이드로 합류했습니다. 그는 렙차족 마을에 가고 싶은 나의 열망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친구 중 렙차족 마을에서 온 젊은이가 있어 연락이 닿았고, 어렵게 출입 허가를 받았지요.

그렇게 나는 신비한 은둔의 마을로 들어가게 되었고 렙차족의 마을은 천년 이래 처음으로 현대문명의 카메라와 마주하게 됐습니다.

“PD님은 렙차족과 아주 꼭 닮았어요. 마을에 들어가면 그곳 사람들이 환영할 거 같습니다.”

내가 원주민들과 닮았다고? 동북아시아 대한민국 사람인데 설마 서남아시아 렙차족과 닮았겠어? 나는 그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렙차족의 거주지 종구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산촌의 풍경도 그렇고 사람들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외할머니댁에 놀러온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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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렙차족의 거주지 종구마을)

렙차족 사람들은 외부와 단절하고 자신들의 문화와 관습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멀리서 찾아온 이방인을 아주 따뜻하게 맞이해주었습니다. 소와 쟁기로 밭을 갈고, 소꼴을 베거나 땔감을 구해오는 모습이 60~70년대 우리의 시골과 흡사해 보였습니다.

해발 1,450미터의 고산지대지만 아열대성 기후라서 온통 숲으로 우거져 있었습니다.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도 사람들은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맡은 일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나무를 타고 굴렁쇠를 굴리며 놀았습니다. 소녀들은 등에 가득 풀짐을 지고 산에서 내려왔지요.

닭과 강아지는 울타리 없는 마당에서 마음껏 뛰놀고 있었습니다.

12월 겨울철인데도 온화한 기후로 노란 유채꽃이 만발했고 마을 여기저기 텃밭에 싱싱한 채소가 자라고 있었지요.

렙차족의 주식은 쌀과 밀, 수수와 옥수수인데 모두 자급자족합니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아 낫으로 수확하고 절구질로 빻아 식량을 만들지요.

마을의 소득원은 차(茶), 생강, 약초라고 했습니다. 특히 이곳 약초는 일교차가 커서 약성이 뛰어나다고 알려졌습니다. 당연히 비싼 값을 받지요. 수백 종의 난초와 야생화도 마을의 자랑입니다. 꽃은 향기가 박해서 다채로운 빛깔로 벌과 나비를 유혹한답니다. 하얀 설산과 그 아래 짙푸른 녹음(綠陰), 울긋불긋 꽃동네와 꾸밈없는 표정의 렙차족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이곳에서는 시계를 보지 않습니다. 수탉의 울음으로 아침을 맞고 온갖 새들의 노래로 일할 때 밥 먹을 때를 압니다. 그래서 시킴에서 렙차족은 새들과 소통하는 사람들로 통합니다.

넘치거나 부족하거나 서로 나누며 살기에 빈부격차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 공동체에 양반과 서민을 가르는 신분제도가 엄격하지만 큰 갈등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모두 운명에 순응하며 오순도순 살고 있지요.

종구 마을은 미국의 인디언 보호구역처럼 인도 시킴주에서 특별히 외부 문명에 오염되지 않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 긴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출입 조건이 까다로워 어지간해서는 허가증을 받아내기 어렵습니다.

나는 정말 운 좋게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들어온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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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렙차족 마을에서 바라본 캉첸중가)

이곳의 생명은 히말라야의 캉첸중가 설산에서 비롯됩니다. 만년설이 녹아 빙하를 타고 링자 폭포로 떨어지면서 토지를 적십니다. 마을로 흘러드는 띵봉 시냇물은 맑기가 그지없어 그대로 식수가 되지요. 이런 낙원을 렙차족은 어떻게 찾아왔는지 궁금했습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아득한 옛날 저 산 너머 동쪽에서 왔습니다.”

이주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직 입과 입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로만 기원을 짐작할 뿐입니다. 시킴의 산맥 너머 동쪽이라면 중국의 서부일까요?

렙차족의 모습은 확실히 동남아시아나 서아시아 인종과 다릅니다. 몽골, 한국, 일본인과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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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렙차족 아기의 몽골반점)

렙차족 아기들의 엉덩이에는 푸른 몽골반점이 선명합니다.

나는 그동안 동남아 지역을 취재하면서 고산족인 라후족, 아카족, 카렌족이 고구려 유민일 것이라는 추론을 접하고 놀랐었습니다.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멸망하면서 수만 명의 유민이 중국으로 끌려갔고, 양쯔강 상류까지 이주하는 디아스포라가 이뤄졌습니다. 그렇게 전쟁의 아픔을 겪은 유민들은 통치 세력과 이민족의 침략을 피해 험준한 고산지대로 피난했다는 설입니다. 실제로 그들 고산족의 풍습은 한민족과 유사한 구석이 아주 많습니다.

나는 종구의 렙차족도 우리 민족과 관련이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렙차의 언어 형식이 한글과 다르긴 하지만 초성, 중성, 종성이 있고 주어, 동사, 목적어의 어순 등이 비슷합니다.

국내의 학자들이 동남아 고산족과 한민족의 문화적 유사성에 관해 연구 논문을 발표했고, 가톨릭의대에서는 태국 치앙마이에서 라후족 아카족의 혈액을 채취해 DNA검사를 했었지요. 그 결과 한국인에게 특정적으로 나타나는 염색체 배열단위 일베체형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렙차족 또한 혈액검사를 한다면 우리와 동질성을 확인하게 될 거라 믿습니다.

그런데 나는 고구려보다 가야의 유민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렙차족 마을의 박물관에서 흙으로 빚은 토기를 발견했는데 가야 토기가 연상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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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렙차족 박물관의 토기)

나는 자연과 역사 다큐멘터리를 오래 취재하고 다녔기에 나름 눈썰미가 있는 편이지요. 언젠가 촬영했던 가야 토기와 렙차족의 토기가 너무 닮아서 탄성을 질렀습니다.

가야의 김수로왕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과 결혼했습니다. 고대이지만 허황옥은 바닷길을 따라 인도에서 가야까지 왔습니다. 가야제국이 멸망했을 때 유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일본으로 인도로 혹은 히말라야 산기슭으로 이주했을 겁니다.

렙차족의 마을에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 부족의 기원을 알기 위해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역사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지요.

박물관 중앙에 진열된 커다란 작두 또한 가야의 작두와 흡사했습니다. 거대한 작두는 농기구가 아니라 종교적 제의(祭儀)에 쓰이는 상징입니다. 우리의 무당이 작두를 타는 의식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렙차족의 마을에는 의사가 없습니다. 우리의 무당과도 같은 샤먼이 주술로 치료합니다. 심리적인 안정을 줘서 그런지 곧잘 낫는 모양입니다.

마을에서 며칠을 지내다 보니 렙차족 사람들과 제법 친해졌습니다. 어른도 아이들도 나만 보면 활짝 웃었습니다. 행복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다큐멘터리를 촬영 중이었지만 나는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됐습니다. 그들의 생활 자체가 너무도 행복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옥수수 방아를 찧던 할머니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할머니. 이곳에서 살기 좋습니까?”

“좋다마다. 여긴 부족한 게 없어. 사람들도 다 좋아. 나는 죽어서 다시 태어나도 렙차의 나로 태어나길 원해.”

이래서 행복 지수가 높나 봅니다.

학교에서 순박하게 생긴 열여덟 살 소녀 푸르킷 렙차를 만났습니다. 푸르킷은 학교에서 보조 교사로 일을 배우고 있는데, 주로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베이비 시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보면 볼수록 영락없는 한국 소녀였습니다. 표정은 밝고 맑은데 가족의 이산(離散)으로 상처를 안고 있었습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동생 둘은 사원으로 도시의 일터로 떠나고 자신은 마을의 친척 집에 얹혀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웃는 얼굴이었지요.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에 찡그리면 안 된다고 말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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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렙차족 아이들)

일주일을 머물면서 나도 렙차족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들과 똑같이 먹고 자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고 흡사 초등학생 시절 외갓집(경남 합천군)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요. 들녘의 풍경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경주 외곽의 농촌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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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쟁기질하는 풍경)

소에게 일을 시키는 소리도, 소의 울음소리도 똑같았습니다.

렙차족은 오늘만 생각합니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티벳불교의 영향을 받은 종교가 있지만 그들은 자연을 숭배합니다. 칸첸중가의 위대함을 믿고 자연에 순응합니다.

그들의 전통을 따르고 이웃과는 서로 나눕니다. 몸이 부서지더라도 영혼은 자연에 의해 보호된다고 믿습니다.

취재 일정을 마치고 마을을 떠나는 날 렙차 마을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며칠 정들었다고 이별을 아파했습니다. 나도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습니다.

둡덴 렙차 족장님께 한국산 팩 소주를 선물로 전했지요. 그러자 족장님이 소주를 산신의 위패를 모시는 곳에 소중하게 올려놓았습니다.

“나는 이 선물을 마시지 않을 겁니다. 언젠가 당신이 여기 다시 오는 날 같이 마시기를 캉첸중가 신에게 기도합니다.”

한 번 오기도 힘든 이곳에 내가 두 번 올 수 있을까? 아마도 저 팩 소주는 저 자리에서 유물처럼 보관될 테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촬영하고 온 시킴왕국의 렙차족 마을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방송진흥위원회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됐고, KBS 특집 다큐멘터리 ‘행복의 집 시킴(60분)’으로 방송됐습니다.

한 시간짜리 방송으로 렙차족의 행복을 온전히 표현하진 못했어도, 캉첸중가 산기슭에서 발견한 ‘샹그릴라’를 객관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소개한 것만으로도 뿌듯했습니다. 평생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채워지지 않았던 갈증이 비로소 풀리는 기분이었지요.

두 번 다시 갈 수 없을 줄 알았던 내 마음의 샹그릴라 렙차족 마을.

그런데 다시 갈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딱 5년 만에 또 다른 방송 프로그램 취재를 위해 시킴왕국의 종구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렙차족 사람들은 모두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마치 이산가족이 재회한 것처럼 끌어안고 등을 두드렸습니다.

“이리 와요. 형제여.”

족장님은 나를 위패를 모신 성전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비단 보자기를 풀었습니다. 놀랍게도 5년 전에 내가 선물한 한국의 팩 소주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소주를 개봉해 나눠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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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특집다큐멘터리 ‘행복의 집 시킴’)

“나는 당신이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족장은 왜 그렇게 믿었을까요? 사실은 나도 언젠가는 꼭 렙차 마을에 올 거라는 희망 섞인 기대가 있었지요.

처음 봤을 때 낭랑18세 소녀였던 푸르킷은 어느새 23세의 아리따운 숙녀로 성장해 학교 선생님으로 활동 중이었습니다.

그 사이 마을에 아담한 도서관이 지어져 있었습니다.

“렙차족과 한국인은 운명으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도서관은 한국 사람들이 찾아와 지어주었습니다. 당신이 우리 마을을 최초로 세상 밖에 알렸고, 또 다른 한국인들은 도서관을 선물했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었습니다. 언젠가 렙차족 청년이 한국으로 건너가 근로자로 일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열병에 걸려 쓰러졌는데 제주도의 한 교회 사람들이 간호해주면서 인연이 맺어졌고, 도서관과 학교 건립까지 약속했다고 합니다.

히말라야 산기슭의 은둔의 왕국 렙차 마을 사람들을 세상과 연결해 준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니! 분명히 렙차족은 고구려나 가야의 유민이었음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부엌 아궁이를 바라보다 무심코 유년 시절의 외가댁을 떠올립니다. 아련한 그 시절의 그 풍경들 그 얼굴들…

””

까마득히 망각하고 있었던 소중한 추억을 소환해주는 렙차족 마을에서 나는 인생의 항로를 새삼 점검해봅니다. 거친 파도가 앞을 막아도 이제 항로를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히말라야 산기슭 지상의 샹그릴라에서 나 또한 한없는 행복감을 얻었고, 다른 이들에게 그 포만감을 나눌 마음의 여유를 찾았습니다.

<끝>

<수상작>

수필 부문 동상 – 히말라야 순례길

나용준
  1. 사우스 안나푸르나*
참 나를 찾아 떠난

순례길 11일째,

저 멀리 히말라야 만년설의 고향

그 하얀 언덕에

백설의 향연이 장엄하게 눈 앞에 펼쳐진다.

수많은 사람이 걷고 또 걸었을 이 순례길

얼마나 많은 가슴속의 사연들을

듣고, 듣고 또 묻었을까.

겹겹이 이어지는 능선

천 길 낭떠러지 절벽 길

깊고 깊은 심산유곡

어질어질 식은땀이 흐른다.

조심조심 한 걸음 한 걸음

무거운 발길,

걷고 또 걷고 걷고 또 걷고,

이른 아침 눈을 뜨니

몸은 지쳐 있지만

의식은 점점 또렷해져 가고,

동쪽 하늘은 불그스레

예쁘게 치장을 하고

산바람도 상큼하다.

뭉게구름, 새털구름이 몽실몽실

푸른 하늘이 푸른 바다 되어

구름 사이사이로 유유히 흐른다.

간두룩* 마을 능선 산길을 따라

몇 고개를 넘으니, 가까이

사우스 안나푸르나*가 안개구름에 휩싸여 있고,

저 멀리서 마차푸차레*도 희미하게

보일 듯 말 듯 얼굴을 내민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웬일인가.

여기저기 유영하던 구름이

서서히 짙게 내리깔리더니

맞은편 북쪽 하늘에서도

서쪽 하늘에서도 산봉우리 밑으로

검은 구름이 몰려온다.

아침에 맑았던 하늘이 무슨 조화인가.

짙은 먹구름이

계곡 사이사이까지 침투하고

온천지를 뒤덮더니,

우르릉 쾅쾅, 콰다당 타당 탕탕탕, 번쩍번쩍 꽈다당 찌이익찍찍

콰다다다당 타앙탕탕

천둥 번개소리와 함께

우두두둑 폭우가 쏟아진다.

주르륵주르륵 죽죽

세차게 몰아치는 빗줄기,

한두 시간

하루 이틀에 끝날 폭우가 아니다.
  1. 리틀 파라다이스*
순례길 12일째,

조그만 언덕 꼭대기에

허름한 민가 몇 채

이름하여 리틀 파라다이스,

작은 천국 마을에서 폭우를 피해 발견한

오래된 민박집,

번쩍번쩍 우르릉 콰아아앙

우다다당 콰다다아앙 타앙탕 탕탕~~

먹거리는 다 떨어져 가고,

쌓일 대로 쌓인 육체적 피로에

오두막 가게에 남아 있는

몇 가지 음료수와 빵, 오래된 과자로 허기를 채운다.

하루, 이틀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막막하고 답답한 가슴에 창문을 연다.

다시 먹구름이 몰려온다.

저 멀리에서 번쩍번쩍 번개가 치더니

억수 같은 장대비가

사정없이 오두막 지붕을 내리치는데,

이 낡은 집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갑자기 태고의 두려움이

온몸을 엄습한다.

밤이 되어

낡은 나무 침대에 등을 붙인다.

피곤함이 쌓여

바로 잠이 들어야 하는데,

정신은 더욱 말똥말똥

뜬 눈으로 긴 밤을 지새우고,

온갖 상념은 날개를 달고

쉴 새 없이 여기저기 배회한다.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거대한 대자연의 장엄함 앞에

나의 존재는 무엇이란 말인가.

오도가도 못하고 갇혀 버린 이 순간은

또 무엇인가.

다시 주루룩 주루룩 비가 쏟아진다.

이 깊은 칠흑의 밤

나 홀로 텅 빈 방에 앉아

창문을 연다.

빗소리에 점점 빠져들고

의식이 희미해진다.

마치 꿈속에서 들리는 음악처럼,

비몽사몽간에 들리는 빗소리가,

희미한 빗줄기를 따라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수백 번

나와 함께 동행하면서,

의식 깊은 곳까지

나를 데려간다.

이상한 일이다.

가슴에 쌓인 묵은 찌꺼기들

주룩주룩 내리는 비에

씻겨 내리고, 계속 일어나는

생각, 생각 꾸러미들

지우고 지우고 또 지우려 해도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던

오래된 생각의 파도들이

잔잔히 가라앉더니

하얗게 하얗게 머리가 비워진다.

무념무상!

신비로운 일이다.
  1. 소낙비와 물방울
순례길 13일째,

길고 긴 세월 견고하게 쌓여

씻을 수도, 내릴 수도, 닦을 수도 없는

녹슨 철근 같은 고정관념과

잉태 전부터 품어왔던

근원적인 절대고독이 얽히고설켜서

흔들리며 춤사위를 하는 사이,

이 깊고 깊은 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예리한 빗줄기가 날카롭게

오래된 낡은 생각들을

여지없이 깨부수고,

연이어 떨어지는 빗줄기는

오목하게 패인 땅바닥에

수직 낙하하면서

크고 작은 물방울을 만든다.

방울방울 맺힌 수많은 물방울들이

사라졌다 생기고

생겼다가 사라지고를 반복하면서,

이내 작은 물줄기 되어

개울을 타고 내려간다.

어디로 가는 걸까.

그 목적지는 어디인가.

우르르으응 콰다다당 탕탕타아아앙

뿌지지직 찌이익 찍찍 타아아앙

쿠다당 타다다다당탕탕

빗소리와 천둥소리가

묘한 화음을 만들고 있는데,

나는 다시 신비의 고요 속으로 침잠한다.

오랫동안 빗줄기를 깊이 바라본다.

빗줄기는 바람에 흩날리며

앞뒤 좌우, 위아래로 비행하더니,

다시 본래의 자리를 찾아

굵은 장대비가 되어,

땅바닥의 작은 웅덩이 물과 결합되면서,

쉴 새 없이 다시 새로운

물방울을 만들어 낸다.

수소 분자 두 개와 산소 분자 한 개가 만들어 낸

이 수많은 물방울들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인가.

물방울은 터져서 물이 되고,

그 물은 작은 계곡을 따라

흐르고 흘러 강에 이르고,

그 강물은 다시 바다로 흐른다.

그 바닷물은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내리고,

그 비는 다시 새로운 물방울을 만든다.

태어나고 사라지고

사라지고 태어나고

나의 존재는 무엇이고

모든 존재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1. 번뇌와 고요함
순례길 14일째,

몇 날 며칠

폭우는 그칠 줄 모르고

이제 순례의 중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 순간

끊임없이 일어나는 번뇌

디레디레 잘레만느*!

세음을 관하는 보살처럼

의젓하게 앉아서

무심, 무심하게

빗속을 유영해야 하는가,

아니면 웃통 벗고,

팬티 바람에 미친 듯이 미친 듯이

태풍이 몰아치는

황망하고 어두운 빗속을 걸으며,

야아아, 덤벼라 덤벼!

운명아, 덤벼라

두 팔 벌려 소리 지르고

악을 써야 하는가.

디레디레 잘레만느!

우당탕탕, 우르르응콰아아앙

번쩍번쩍 콰아앙

콰다다다당 탕 쾅~쾅

폭우 속

밤은 깊어가고,

마음은 어제 보았던

그 빗줄기 따라 다시

느린 유영을 시작한다.

디레디레 잘레만느!!

바쁜 걸음에 길들여진 마음아,

보아라 보아라

전등 불빛 사이사이 하염없이 내리는

저 아름답고 찬란한 은빛 유성의

끊임없는 행진을,

흐릿한 두 눈도

희미한 빗줄기 따라

대지 깊숙이 스미고,

빗물의 고향

천 길 바닷속의 고요와 평화가

내 마음을 이끌고,

나는 다시 고요와 침묵 속에

깊이 침잠한다.
  1. 구름바다
순례길 16일째,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가

눈앞인데,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돌리려니

가슴이 답답하고 모두가 원망스럽다.

내 삶은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가,

원망도 후회도 이제는 소용없다.

하산 길 되돌아가는 길은

오를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들,

노랑 파랑 작은 새들의 노랫소리,

여기저기 들풀들의 해맑은 인사,

이름 모를 야생화의 하얀 미소,

졸 졸 졸 아름다운 계곡 물소리,

비 온 뒤 풀빛은 푸르디푸르고,

숲 향과 짙은 흙내음은

가슴속 깊이깊이 스민다.

목적지도 없고 바람도 없고,

고민도 없고 욕심도 없고,

생각도 없고 번뇌도 없고,

모두 모두 내려놓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방하*!

비바람이 물러나고

다시 찾은 일상의 평온함,

먹구름과 천둥

번개와 번뇌가 멸하니,

겹겹이 쌓이고 쌓여

흐릿했던 먼 산은,

다시 그 맑고 장엄한 자태를 드러낸다.

상쾌한 계곡 산바람이 잠을 깨우고,

창문을 여니

눈앞에 드넓게 펼쳐진 바다,

멀리 동쪽 하늘에서

떠오르는 생명의 빛,

바다에 비친

하얀 순수의 절정,

태고의 신비와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듯,

깊고 깊은 산

끝없이 펼쳐지는 능선 따라,

안개가 파도 되어

계곡 사이사이

쏴아악 쏴아악

밀렸다 들어왔다

들어왔다 밀렸다,

바람 따라 흐르다 머문

피어오르는 하얀 물결,

바라보고 바라보니

나도 그 물결에 휩쓸려

바다가 되고,

바다는 내가 되어

하나로 합일된다.

꿈인가

생시인가,

저 넓고 깊은

마음의 고향

아, 구름바다!

””
  1. 삼불의 만트라*
순례길 17일째

두우웅 두우우우웅 두우우웅

두우우우우우우으으응두으으응

새벽 세 시

멀리에서 들리는

어느 산사의 종소리,

두 눈을 뜬다.

희미한 달빛이 문틈 사이로 들어와

마치 따라오라는 듯 손짓하며

나를 인도한다.

그 달빛 따라 문을 열고

뒤뜰로 나가니,

아, 이게 웬일인가

세 분의 보살이

눈앞에서 염화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아아….

삼불이여!

어스름 달빛 아래

의젓하게 경건하게

신비로운 경이감으로

나를 감싸 안는다.

이 깊은 산중에

이 깊은 한밤중에

이 무슨 기적인가.

두 눈이 의심스러워

다시 바라본다.

보면 볼수록 삼불은

살아 움직이면서,

부드럽고 해맑은 얼굴

환하고 또렷한 모습으로,

빛을 발하며,

인자하고 자비로운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합장을 하고

눈을 감는다.

선명하게 들리는 신령스러운

삼불의 음성. . . . . . . . .

그대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고통의 씨앗은 무엇인가

그대는 왜 고통의 지옥에서

허우적대는가.

더 가지려 하지 말아라

인정받으려 하지 마라,

사랑받으려 하지 마라

너무 잘하려고 노력하지도 말아라,

착한 사람이 되려 하지 말고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라.

더 멀리 가려고 하지 말아라

그대는 이미 도착했으니.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가

그대의 집이다.

미래를 기다리지도

무얼 바라지도 말아라,

지금이 언제나

최고의 순간이다.

그대는 강하며

그대는 자유로운 영혼,

지복의 세계에서

영원히 거하리니,

유일하고 영원한 진실은,

생각과 생각 사이의

무심과 침묵의 빈 공간,

지금 찰나의 이 순간 순간

바로 여기에,

생생하게 존재하는 것,

헛된 망상과 번뇌로

괴로워하지 말고

모두 내려놓으라,

방하하라.

성공도 없고 실패도 없고,

큰 것도 없고 작은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고,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으니. . . . . .

눈을 떴다.

순식간에 세 분의 보살이 사라지고

세 개의 산봉우리가 달빛 아래

희미하게 보인다.

혼미했던 정신이 돌아온다.

새벽 4시, 뒤뜰 정원 잔디밭

바람 소리조차 숨죽이는

절대 고요 속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다시 눈을 감는다.

여러 생각들이

오고 가고 오고 가더니,

이내 생각이 엷어지고

깊은 어둠 속으로

의식이 서서히 내려앉는다.

흐릿한 의식이 이따금 나를 깨운다.

의식은 점점 깊은 내면으로 가라앉고

그 끝에 이르러 한동안 배회하더니,

이내 희미한 어둠 속에 깊이 침잠한다.

뭔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깊고 깊은 의식의 끝, 모든 존재의 근원,

나를 잃어버린 곳에서

이내 의식이 끊긴다.

얼마나 지났을까.

느낌도 없고 의식도 없고,

나도 없고 나라는 생각도 없고,

텅 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 자리, 그 자리에,

오롯이 떠 있는 한 가지,

우주와 나와 삼라만상이

뒤엉키고 연결되어

하나가 된 그 자리,

본래의 고향

처음으로 가 본 그곳,

존재와 어둠도 없고

고요와 침묵조차 없는 그 자리

아, 아, 아~~

간절한 기도의 응답인가

오랜 고통과 번민의 보상인가,

돌고 돌아 다시 찾은

내 영혼의 고향, 기쁨의 눈물로

가슴이 젖는다.

천만 겁 전생에서 불도를 이루어 성불하고, 인간으로 환생했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토록 기다렸던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 참 나로 다시 태어나는

이 환희심,

나는 완전한 존재다.

깨어라! 깨어라!

오움오오오우우우움~~~*

오움오오우우우우움~~~!

오직 감사할 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니

눈물이 난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세상의 꽃

태고의 씨앗,

빛을 발하며

영혼이 잠시 머물던 그곳에,

당신의 모습이 오롯이 새겨져,

그대는 내가 되고

나는 그대가 되어,

저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깊은 울림

진아여여* (眞我如如) !

””
  1. 영혼의 고향, 마차푸차레
순례길 18일째,

저 경이롭고 경건한

영산이 눈 앞에 펼쳐진다.

몇 날 며칠을 기다려야

완전한 얼굴을 보여준다는

신령스러운 산,

신비로운 그 얼굴을

한 번만 봐도

영적인 구원을 얻는다는,

인간의 발길조차 허락하지 않는

깊고 오묘한 산,

천둥 번개 폭우가

발길을 돌리게 하지 않았다면

마주할 수 없었던

마차푸차레!

찰나 속에 영겁의 세월이

우뚝 솟는다.

새하얀 칠흑의 광채

까아만 순백의 포옹

흑백이 하나

시공이 하나

시작과 끝이 없는 곳

신들의 고향,

전율하는 인연의 고리

모두가 하나,

연기불이 (緣起不二)

둘이 하나 되어

나도 없고 너도 없고,

불이무아 (不二無我)

있는 듯 없는 듯

모든 것은 사라지고,

무아무상 (無我無常)

보이는가, 저 청천 허공의 외침,

들리는가, 저 고봉 준령의 자태,

무상지공* (無常之空)

나는 어디에 있는가

깨어라 깨어라

진아여여*(眞我如如)!

(주)

*히말라야 순례길, 그 영혼의 고향을 찾아서 : 이 글은 순례기(수필)이지만, 운문 형식으로 썼다. 순례 도중에 기상악화로 순례를 포기했는데, 순례의 주목적이 나를 찾는 여행이라고 본다면, 그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사우스 안나푸르나 : 네팔에 위치한 히말라야 산맥 남쪽에 있는 고산으로 높 이는 7219m

*간두룩 : 사우스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사이에 있는 작은 산골 마을

*리틀 파라다이스 : 사우스 안나푸르나 전방 8km에 위치한 뷰 포인트

*마차푸차레 : “물고기 꼬리”라는 뜻으로, 히말라야 남부에 있는 높이 6997m의 산. 에베레스트의 아마다블람, 알프스의 마터호른과 함께 세계 3대 미봉으로 불린다. 봉우리 중 가장 아름답고 영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간의 출입이 통제되는 히말라야의 영봉이다.

*디레디레 잘레만느 : “마음아, 천천히 천천히 걸어라”는 뜻의 인디아 방언

*진아여여 : Be As You Are : “있는 그대로 근원적인 참 나로 존재하라”는 뜻. “나는 누구인가”의 저자이며 성자인 라마나 마하르쉬의 가르침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 순례객들의 목적지 ABC캠프 (4130미터)로 갈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캠프로 높이는 3703미터

*방하 : 불교 용어로, “모든 집착과 인연을 내려놓고 무아의 경지에 드는 것”을 말한다.

*삼불의 만트라 : 아래 세 봉우리가 밤에 보았을 때, 흰 눈에 덮여서 세 분의 불상처럼 보였고, 마치 심오한 만트라(산스크리트어로, 깨우침에 도움 되는 모든 마음의 도구, 말, 글, 또는 가르침 등)를 전해주는 것 같았다.

””

*왼쪽부터 사우스 안나푸르나, 히운출리, 마차푸차레

*무상지공 (無常之空) : 무상은 모든 것이 덧없다, 사라진다는 뜻으로, 불교 교리의 핵심인 공 (의식을 고집하거나 대상을 실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 사상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무상은 즉 공”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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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부터 매달 세번째 금요일 6시에 인문예술살롱 “6시 예향재”를 성북구청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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